김두관은 1959년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를 여의고, 해외로 돈벌이를 나간 형들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등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남해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전문대학교 행정과를 거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했습니다. 대학 시절 동생 김두수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고향 남해로 낙향해 민중의당 후보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5%도 채 되지 않는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박희태 후보에 밀려 낙선했습니다.
이 후 고향 이어리의 이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기반을 쌓아나갔고, <남해신문>이라는 지역 신문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신망을 쌓았습니다.
김두관은 이장으로 시작해 군수를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과 경상남도 도지사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돼 친노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신분으로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 행위이자 경남도정을 저버리는 타살 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할 때 보인 일방적 비방에 가까운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 뒤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고 그 덕에 대한민국의 제20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21대 총선에서 당의 요청이자 자신의 선택으로 김포를 버리면서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였고,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2021년 7월1일 특권과 차별 없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제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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